“폭력과 예술은 공존할 수 없어… 인성까지 갖춘 예술인 키우겠다”
이대봉 서울예술학원 이사장
성악도 아들 학교폭력으로 잃었지만
파산 위기 학교 인수 후 13년간 운영
‘서울아트센터’ 지역 예술 명소 되길
“서울예술학원의 이름으로, 세계적인 음악 영재들을 초청하는 ‘서울 페스티벌’을 꼭 개최하고 싶습니다.”
22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 서울아트센터에서 만난 이대봉 서울예술학원 이사장(82·참빛그룹 회장)은 어린 예술학도 얘기를 할 때마다 눈빛이 빛났다. 서울예술학원이 배출한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조성진, 임유찬 등 동문의 이름을 하나씩 언급하며 “실력뿐 아니라 인성까지 갖춘 예술인을 키워내고 싶다”고 강조했다. 서울예술학원은 서울예고와 예원학교를 운영하는 학교법인이다.
26일 개관식을 앞둔 서울아트센터는 2010년 서울예술학원을 인수한 이 이사장이 13년간 품었던 꿈의 결실이다. 이 이사장은 1987년 당시 서울예고 2학년에 재학 중이던 셋째 아들 대웅 군을 학교폭력으로 잃었다. 촉망받는 성악도였던 아들은 선배들에게 맞아 쓰러진 뒤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미국 출장 중 소식을 듣고 급히 귀국하는데 도저히 화를 삭일 수 없었죠. 하지만 죽은 아이가 다시 돌아오진 않잖아요. 가해자들을 용서하고, 대신 앞으로 폭력이 없는 학교를 만들자고 마음먹었습니다.”
이듬해(1988년) 이 이사장은 ‘이대웅 음악장학회’를 설립했다. 아들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고, 같은 꿈을 꾸는 후배들을 지원하고 싶어서였다. 장학회는 음악 영재를 발굴하기 위한 성악 콩쿠르를 개최하고 유학비도 지원하고 있다. 음악도뿐 아니라 소년소녀 가장, 독립운동가 자손들에게도 장학금을 준다. 올해까지 36년간 5만1249명에게 약 221억 원을 지원했다.
그룹을 경영하며 호텔, 물류, 에너지, 제조 등 분야에서 사업을 영위해온 그는 2010년 당시 이 학교 이사장의 비리로 학교가 파산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을 듣곤 서울예술학원을 인수했다. 14층짜리 부산 빌딩을 학교에 기증하고, 110억 원을 출연해 부채도 탕감했다.
아픈 기억이 있는 곳이지만 아들의 흔적이 남은 학교가 망가지는 것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어서였다. 낡은 교습실을 리모델링하고 증설해 학생들이 마음껏 연습할 수 있는 환경을 갖췄다. 그가 서울예술학원에 출연한 사재만 총 550억 원이 넘는다.
이 이사장은 학교를 인수하며 학생과 지역 사회를 위한 대규모 공연장을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학교 앞 통학로였던 언덕길에 1051석 규모의 콘서트홀(도암홀)을 갖춘 서울아트센터를 이달 완공했다. 오케스트라와 발레 공연을 할 수 있을 만큼 큰 무대를 갖췄다. 홀 아래층에는 전시 공간인 도암갤러리도 들어섰다. 학생뿐 아니라 신진 예술가들에게도 공연과 전시 기회를 줘 센터를 지역의 문화예술 명소로 키우는 게 그의 목표다.
1953년 설립된 서울예고는 올해 개교 70주년을 맞았다. 올해 졸업생 91명을 서울대에 보낼 만큼 전국 최고의 예술 명문고라는 자부심도 크다. 하지만 학교가 학생들의 실력만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인성이다. 이 이사장은 학생과 학부모에게 감사함을 전했다. “학교를 맡은 지 13년이 지났지만 아직 학생 간 큰 갈등이나 폭력 사건이 없었습니다. 폭력과 예술은 공존할 수 없다는 가르침을 학생들이 잘 지켜준 덕분이죠.”
박성민 기자 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