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찬의 영상 르포르타주]24K 집착한 고집불통 ‘황금 호텔’ 세운 회장님

【하노이=뉴시스】화려하고 웅장한 그랜드플라자 하노이 호텔 로비에 이대봉 회장(왼쪽)과 안병찬 언론인권센터 명예이사장이 서있다.                     photo@newsis.com
1989년 4월 마지막 주, 나는 방콕 돈 무앙 국제공항에서 베트남항공 투볼레프 여객기를 타고 사이공(호찌민 시)에 들어갔다. 남부베트남의 멸망을 기록한 『사이공 최후의 새벽』을 쓴 지 14년 만이었다.
먼저 호찌민 시와 중부지방을 3주 간 취재한 뒤 하노이의 노이 바이 국제공항에 도착한 것은 5월 중순이다.
그때 내가 투숙한 통녓(통일)호텔은 프랑스 식민시대에 건축한 신고전주의 양식의 건물이었다. 한때는 웅장하고 우아했을 건물은 보수를 하지 못해서 퇴락했다. 1인 숙박료는 하루에 미화 37달러0센트.◇2011년 한국 호텔 풍경

그로부터 22년이 흐른 어느 날.
그랜드 플라자 하노이 호텔의 3층에 있는 드넓은 중국식당 거문고룸에서 이대봉 회장과 식탁에 마주 앉았다.
회장님의 손님 접대에 영국인 총주방장 폴 알랜 우드, 중식 주방장 텅 캄 셍과 일식 주방장 구니히코 하마다 그리고 이재웅 총지배인이 대기한다. 회장님 수행역인 최준근 운영총괄팀장과 음식접대 담당 여직원 2명도 대령한다.
이대봉 회장은 호텔의 착공과 개점 날짜를 정확하게 꼽아 보인다.
“2007년 6월30일에 착공해서 작년 9월26일에 문을 열었으니까 오늘이 3년 2개월 26일이 됐네요.”
“베트남 정부가 입찰에 붙였을 때 세계 굴지의 44개 업체가 경합했는데 우리는 맨 마지막에 접수를 했지만 공사를 따냈지요.” 이대봉 회장은 “무슨 일이 있어도 2010년 하노이 정도 천년 기념일에 맞추어 개장하겠다”고 맹세하여 베트남 정부의 마음을 잡았다고 한다.

질문 : 건축비가 얼마나 들었나.
이대봉 회장 : 2억 달러다.
질문 : 건축 자금은 모두 이 회장 돈인가.
이대봉 회장 : 은행에서 3500만 달러를 기채 하였는데 이미 700만 달러를 갚고 2800만 달러만 남아있다.
질문 : 이제 흑자를 내는가.
이대봉 회장 : 직원 600명과 임시직원 300명의 급료를 주고 관리비를 내고 남는 정도다. 감가상각과 이자를 따지면 적자지만, 지금 정상화 단계에 진입하려고 발버둥 치고 있다.

그랜드 플라자 하노이 호텔은 대지면적 1만9689㎡(5956평)에 순수한 한국 자본으로 건설한 최첨단 특급 호텔이다. 지상 30층에 객실 618개, 베트남 국회의사당이 내려다보이는 신흥 중심가 쩐지흥 거리에 있다. 이 회장은 자기 호텔이 7성급에 상당한다고 호언장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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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뉴시스】이대봉 그랜드플라자 하노이 호텔 회장(가운데)이 29층 아테네 홀 복도에서 안병찬 언론인권센터 명예이사장(오른쪽)과 유명호 월간 윈도 발행인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photo@newsis.com
먼저 이 호텔 숙박료를 알아본다.
객실은 8등급이다. 한 달 이상 장기투숙자가 묵는 초급 일반 객실(45㎡·13.5평형)은 하루에 미화 60달러, 같은 크기의 데룩스 객실은 120달러, 응접실이 달린 팔러 스위트(70㎡·22.7평형)는 180달러, 다음 등급인 이그제큐티브 스위트(90㎡·27평형)는 240달러, 귀빈실에 해당하는 플라자 스위트(360㎡·35평형)는 360달러이다.
객실 공간이 160㎡-48.5평형인 참빛 스위트는 숙박료가 ‘협상가격(니고시어블)’이다. 29층에 있는 대통령특별실(프레지덴셜 스위트)은 360㎡(110평)형, 최고층에 있는 로얄 스위트 궁전형은 460㎡(140평)이다. 최고급의 두 객실도 숙박료는 협상가격으로 정한다. (2011년 5월 현재)
22년 전 호텔 사정과 대비하니 그랜드 플라자 하노이 호텔은 가히 파천황(破天荒)의 변화를 이루었다고 하겠다.◇이대봉 고집불통

베트남 최신 최대의  ‘황금 호텔’ 건축을 이대봉 회장은 독단적(獨斷的) 판단과 결정 그리고 추진력으로 완성한다. 고집불통의 회장이다. 1000원 한 장을 투입하는 것도 그가 감독했다고 한다.
내가 보건대, 그랜드 플라자 하노이 호텔의 특징은 네 가지이다.
첫째 순수한 한국자본으로 호텔 건축비 2억 달러를 충당했다는 점이다.
둘째 전문건설업체에 건축을 맡기지 않고 회장이 직접 공사를 맡아서 건축비를 3분의 1로 대폭 줄였다는 점이다. 그대신 모든 시설 제품은 최고급품을 썼다.
셋째 구조적으로 로비의 규모가 광활하다는 점이다. 그 면적이 3700㎡(1120평)로 프론트 데스크에서 커피숍과 뷔페식당을 가로질러 좌에서 우까지 좍 열려있다. 이런 광대한 구도의 로비는 다른 어떤 호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이대봉 회장은 호텔을 건설하면서 규모의 차별화를 앞 세웠다고 한다.
“내 이름이 대봉(大鳳)이니까 무조건 크게 지었어요. 건설전문가나 유수한 참모들이 자꾸만 회장님 너무 큽니다, 회장님 잘못된 겁니다, 그렇게 돈 많이 들여 좋은 시설을 할 필요가 없어요, 냉난방비가 너무 많이 듭니다, 하며 반대했지요. 중국에도 이런 규모는 없습니다. 중국 샹그릴라 호텔과 비슷한 점이 있지만 세계에 이런 규모는 없어요.”
넷째 특징은 가장 두드러진다. 호텔 내부가 온통 황금 장식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루 전에 나는 이 호텔 ‘황금 신부방(브라이드 룸)’에서 ‘베트 키우(베트남해외 교포)’ 출신의 혼혈 스타 제니퍼 팜을 만났는데, 한국식 폐백실을 갖춘 신부 방 내부는 온통 황금 장식이어서 호화로웠고 눈부셨다.

◇24K황금 집착

모두 이대봉 회장의 ‘황금 애착’이 만들어 낸 작품이다. 그는 이 호텔 내장 공사를 할 때 황금을 탐하고 황금에 눈이 먼 듯이 집착했다. 나는 황금 애착에 질문 초점을 맞추었다.

질문 : 어떻게 황금빛을 칠했는가.
이대봉 회장 :  황금색칠이 아니다. 24K 황금종이를 덮었으니 진짜 황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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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뉴시스】그랜드플라자 하노이 호텔과 참빛타워 전경.                     photo@newsis.com
질문 : 중국식 냄새가 나는데.
이대봉 회장 : 아니다. 이탈리아식 냄새다. 마땅한 금종이를 찾아서 해외 생산업체 현장을 일일이 돌았다. 결국 이탈리아 전문 회사를 찾아서 최고품을 수입했다. 열 번 이상 가서 보고 주문했다.
질문 : 다른 곳에 금장 호텔이 또 있나.
이대봉 회장 : 두바이의 7성 호텔 버잘 아랍이 최고의 금장을 했다. 그 다음이 우리 호텔이다.
질문 : 돈이 얼마나 들었는가.
이대봉 회장 :  사들일 때는 금값이 현재의 4분의 1이던 때여서 남는 장사가 됐다.
질문 : 내장에 들어간 금값이 전부 얼마인가. 몇 톤이나 들었나.
이대봉 회장 : 허허, 영업상 비밀이라서 구체적인 설명은 하지 않겠다.
질문 : 참모들 반응은.
이대봉 회장 : 좋은 것을 하는데 어떻게 끝까지 반대하겠나.이 회장은 맨 먼저 꼭대기 29층에 있는 460㎡(140평)짜리 궁정형 로얄 스위트로 안내한다. 작년 10월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3(한·중·일) 정상회의 때 인도네시아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대통령이 묵은 곳이다. 내가 “방값을 얼마 받았는가”하고 물었다.
“1만6000달러짜린데 3500달러 받았던가.”
한 층 아래 있는 360㎡(110평)형의 대통령특별실(프레지덴셜 스위트)은 필리핀의 베니그이 노이노이 아키노 대통령이 숙박했다고 한다. 두 국빈실의 천정과 기둥과 벽면에서 24K 금장이 번쩍거린다.
호텔은 로비를 비롯해서 2층 크리스털룸과 밀레니엄홀, 3층 아테네 천장화 회의실, 29층 몽블랑 연회장 등 57개 공간이 모두 금장의 빛을 뿜어낸다.

◇팁 거절하던 22년 전 하노이

앞에서 언급한 대로, 22년 전 노이 바이 공항에 도착했을 때 혁명 수도 하노이 풍경은 낯설기 짝이 없었다. 도시 분위기는 상냥한 호찌민 시에 비하면 근엄하고 무뚝뚝했다.
나는 대합실을 휘둘러보고 베트남항공사가 운영하는 택시접수대를 겨우 찾아냈다. 외국인을 위한 영어 안내판 하나 걸어놓지 않아서 찾기가 수월치 않았다. 시내 통녓호텔에 가려고 접수계 여직원에게 규정 요금인 미화 15달러를 지불하자 정확히 영수증을 발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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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뉴시스】이대봉 그랜드플라자 하노이 호텔 회장(가운데)이 3층 황금신부방에서 안병찬 언론인권센터 명예이사장(오른쪽)과 유명호 월간 윈도 발행인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photo@newsis.com
국영 베트남항공사 운전사가 낡은 미국제 시보레 차로 시내까지 데려가서, 규정에 따라 먼저 베트남항공사 예약사무소와 이민국 사무소로 안내한다. 항공기 출국일자와 하노이 체류일자를 사전에 확인하는 통제적 절차였다.
호텔에 도착한 후 운전사에게 팁으로 잔돈을 내밀자 “무슨 소리냐”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사절한다. 그때는 사람들이 때가 묻지 않아서 그랬다.◇통녓호텔 풍경

내가 투숙한 통녓호텔은 복도가 넓고 높은 천정에서 선풍기가 돌아가는 낡은 1급 호텔이었다. 숙박료는 2중 가격으로 베트남 동화폐로 표시한 요금은 현지 베트남 사람과 소련 등 사회주의 국가 관광객에게만 적용했다.
당시는 베트남이 도이머이 개혁정책을 선포한 직후여서 나는 시장 물가를 철저하게 조사했다. 그때 조사한 자료가운데 호텔 숙박료를 찾아보았다.
통녓호텔 스위트는 1인 44달러50센트(5만6100동), 2인 49달러50센트(6만6000동), 내국인 해당 없음이다. 1급 실은 1인 37달러(4만4000동), 2인 42달러(4만9500동), 내국인 해당 없음이고, 2급 실과 3급 실은 26달러(2만9700동)에서 33달러(3만6300동)였다.
하노이에서 제일로 꼽는 탕로이 호텔은 쿠바 기술로 건축한 3층짜리 건물 2동으로 객실수는 171실이었다. 스위트는 1인 56달러, 2인 64달러이고 보통실은 1인 42달러, 2인 48달러였다.(1989년 5월 현재)

◇아들의 회한

이대봉 회장은 중소기업인임을 자처한다. 사실은 14개 계열사를 거느린 탄탄한 중견기업 참빛그룹을 이끌고 있다. 항공물류운송업에서 출발한 그는 1997년에 백두산에 최초의 호텔을 건축한다. 천지로 들어가는 곳 해발 2100m 지점에 500만 달러를 투자하여 천상온천관광호텔을 세웠다. 그 뒤를 따라 백두산 대우호텔이 1.6㎞ 아래쪽에 생겼다. 이 회장은 강호동이 1박2일 프로에서 이 호텔을 다녀간 후에 아들을 낳아 이름을 ‘백두’로 지었다며 즐거워했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불퇴전의 기업인 이대봉의 가슴에는 깊은 못이 박혀 있다. 1987년 어느 날, 서울예술고등학교에서 성악을 전공하며 두각을 나타내던 둘째 아들 이대웅이 상급생의 질투 섞인 폭행으로 죽임을 당했다. 그 후 큰 아들까지 사고로 졸지에 목숨을 잃어 가슴에 두 아들을 품는 아버지가 되고 말았다.
2010년 7월에 그는 아들을 추모하여 음악명문인 예술고등학교와 예음학교를 인수하고 학교법인 서울예술학원(전 이화예술학원) 이사장에 취임했다. 이미 아들의 목숨을 빼앗은 죄인을 용서하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이화예술학원 이사장은 내가 창간한 이래 제작을 책임졌던 뉴스 주간지 <시사저널>의 최아무개 회장이 맡고 있던 자리다.
나는 아버지 이대봉의 마음을 알 수 있다. 나도 딸을 가슴에 묻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인권센터 명예이사장 ann-bc@hanmail.net

<언론인 안병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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